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어도어 카진스키 (문단 편집) === 야생 생활 === 사직 후 가족들에게 얹혀살거나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. 카진스키는 동생인 데이비드가 관리직으로 있던 고무 공장에 들어가 일했던 적도 있었는데, 그곳에서 같이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를 [[짝사랑]]하게 되었다. 그러나 그는 해당 여성에 대한 외설적인 글들을 공장 곳곳에 써붙였는데 결국 동생에 의해 해고당했다. 동생에게서 해고 당한 이후 31살이 된 [[1973년]]에 몬태나 주 링컨 블랙풋 강가[* 영화 [[흐르는 강물처럼]]의 배경지이다.]에 가로 3.3m, 세로 3m의 이동식 오두막을 짓고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자연환경에서 생필품을 자급자족하는 [[야인]] 생활을 시작했다.[* 동생이었던 데이비드 카진스키도 1984년 텍사스 주 치와와 사막에서 야인 생활을 하였는데 형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. 그러나 데이비드는 1990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고향으로 돌아갔고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도 하는 등 사회에 완전히 복귀하였다.] 몬태나에서 카진스키의 목표는 기술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. 그는 트래킹, 식용식물 식별, 유기농업, 활을 이용한 사냥과 같은 기타 원시적인 생존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. 그는 [[감자]]와 파스닙([[설탕당근]])을 재배했고 들짐승을 불에 구워 먹었다. 전등 대신 촛불을 켰고, [[시계]]와 [[달력]]도 없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근처 마을의 이웃이 알려줘야 했다. 전화 대신 [[우편]]을 썼는데 가족들이 [[우표]] 밑에 긴급/중요를 뜻하는 붉은 줄을 긋지 않으면 읽지 않을 때도 흔했다. 물은 개울에서 떠왔다. 연 400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했으며, 마을에 들어갈 때는 기어가 없고 오래된 [[자전거]]를 사용하고 고전 작품을 읽기 위해 지역 [[도서관]]에 자주 방문했다. 카진스키는 야생생활 중 많은 양의 책을 도서관에서 읽었으며 개중에는 [[독일어]]와 [[스페인어]]로 된 원서도 있었다. 그외에는 몇 안 되는 이웃 및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했다고 한다. 이윽고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한 산업화와 산림 개발 등으로 인해 자신의 오두막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계를 위협받았고, 지속적으로 산림업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. 이로인해 반드시 산업사회에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. 카진스키는 오두막에서 계속 칩거하며 [[무정부주의]]나 [[사보타주]]에 대한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계속 키워갔고, [[1978년]]부터는 [[IED|사제 폭발물]]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가, 과학자들에게 우편물로 [[폭탄]]을 배달하면서 테러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